People that helps the family of the deceased ministers

“다시 돌아오겠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그 슬픔과 아픔이 있었기에 홀로서기를 일찍 할 수 있었습니다

최완규 강도사님과 남은희(1966년생) 사모님은 2000년 강원도 강릉시 지하에서 반은 예배당, 반은 사택으로 꾸며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개척한지 1년만인 2001년 최 강도사님이 피부암 판정을 받았고 8개월 투병하다가 2002년 4월 15일 천국으로 이사 갔습니다. 최 강도사님은 교회를 섬기고 자리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마지막 두 주 전까지도 예배인도와 설교를 감당했습니다. 최 강도사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남 사모님은 남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슬픔을 표현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가끔씩 멀리 수련회를 떠난 것만 같아 “다시 돌아오겠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남 사모님을 아주 힘들게 한 것은 가까이 동역했던 목회자들이 하루 아침에 발길과 연락을 끊었던 것이라고 합니다.나중에 그들을 만났을 때 그 때의 서운함을 표현했더니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루아침에 어린 자녀들과 지하교회에 남게 된 젊은 사모님은 사람의 말로는 위로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친 것입니다. 남 사모님은 그 슬픔과 아픔이 있었기에 홀로서기를 일찍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편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강릉에 더 있을 수 없어 남양주로 이사했습니다. 자녀들은 처음엔 어려서인지 슬픔과 아픔을 잘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정서들을 알고 표현하기 시작했고, 밝았던 아이들의 감정이 어두워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느 날 5학년이 된 막내가 “왜 나는 아빠가 있으면 안돼요?”라며 엎드려 울기도 했습니다. 둘째는 “엄마가 과부예요? 과부가 뭐예요?”라고 물으며 아주 우울해 했다고 합니다. 남 사모님은 현재 전임전도사로서 남양주의 한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Q. 남편 사별 당시의 정서를 이야기해 주세요.
A. 당시는 너무 정신이 없어 잘 몰랐는데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Q. 남편에게 “좀 잘해줄 껄”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
A. 남편이 병중에 있을 때 병원 검사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그것을 아깝게 여겼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병원 검사비를 아끼지 말고 검사 받고 치료 받게 해줄 껄 싶은 생각이 듭니다.

Q. 언제 남편의 빈자리가 가장 크게 느껴지세요?
A.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 필요할 때, 무거운 가구를 옮기거나 못을 박는 것 같은 일을 할 때 남편의 빈자리가 아쉽습니다.

Q. 엄마지만 아빠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을텐데, 어떻게 감당했는지요.
A. 아빠의 역할도 하려고 하지만 아들들이 남자로 성장하는데 제가 엄마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다 이해해 주지 못하고, 그래서 소통이 잘 안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Q. 사모 역할을 내려놓았는데 마음이 어떤지요.
A. 처음엔 허전한 마음에 큰 교회에 가서 등록도 하지 않고 그냥 예배만 참석했습니다. 지금은 전도사로서 다른 모습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Q. 목사가 아닌 남편으로서의 남편이 그리울 때가 언제인지요.
A. 자녀들과 함께 여행이나 무언가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부부동반이란 글귀에 마음에 허전함이 느껴질 때, 이사 후 무거운 짐이나 전선 등을 처리해야 할 때 남편이 그리워집니다.

Q. 남편 사별 후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지요.
A. 처음엔 후원으로 생활을 했는데, 지금은 전도사로 사역을 하며 사례를 받고 있습니다.

Q. 목유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세요.
A. 목유사가 정말 중요한 시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