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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빠가 개척한 교회가 계속 교회로 이 땅에 존재하고 부흥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유병국 목사님과 김이예(1970년생) 사모님은 2007년 청주에서 개척했습니다. 유 목사님은 원래 사업을 했으나, 큰 형님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후 나이 마흔에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충남 아산에 살던 유 목사님 가정은 2002년 청주로 이사해 그곳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며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2007년 보증금 500만원에 월 30만원짜리 상가에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사택이 없어 예배당 한 쪽을 막아 그곳에서 네 식구가 함께 지내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교인 중에는 외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자매들이 많았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는 남편 대신 생계를 위해 김 사모님이 국제결혼을 중개하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다문화 가정을 많이 알고 지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사역을 하던 유 목사님은 2022년 1월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소 장례는 2일장으로 하고 시신을 화장 후에 어느 교회 뒷산 나무 밑에 뿌려달라고 했던 유 목사님 말이 그만 유언이 됐습니다. 갑작스런 사별로 김 사모님과 두 자녀는 힘들고 어렵지만 남편과 아빠가 개척한 교회가 계속 교회로 이 땅에 존재하고 부흥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김 사모님은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앞으로 신학을 공부해 사역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김이예 사모 (故 유병국 목사), 자녀 유수아, 유정은
후원계좌: 새마을금고 9003-2694-5129-1 (김이예)
Q. 남편 사별 당시의 정서를 이야기해 주세요.
A.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늘 호탕하게 웃으며 씩씩했던 남편이었는데 갑작스런 소천 소식에 주위에 있는 모든 목사님과 지인들이 놀라며 한걸음에 달려와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애통함으로 가슴 아파하며 함께 울어 주었습니다.
Q. 남편에게 “좀 잘해줄 껄”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
A. 경제적 어려움으로 남편보다는 아이들을 먼저 챙기며 ‘우리는 나중에’라며 제 손으로 넥타이 하나 사주지 못하고 섬겨주지 못한 것과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연시하며 외면했던 것들이 제일 마음이 아픕니다.
Q. 언제 남편의 빈 자리가 가장 크게 느껴지세요?
A. 항상 함께여서 몰랐는데 밤에 집에 들어갈 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Q. 엄마지만 아빠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을텐데, 어떻게 감당했는지요.
A. 한 사람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고 아프고 슬퍼서 아이들에게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엄마 자리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커서 본인들도 힘들고 아플텐데 참으면서 반대로 제가 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Q. 사모 역할을 내려놓았는데 마음이 어떤지요.
A. 그동안 열심히 하지 못한 것 같은 후회만 남습니다.
Q. 목사가 아닌 남편으로서의 남편이 그리울 때가 언제인지요.
A. 남편과 함께하며 지나 왔던 모든 것들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생각을 안하려고 고개를 저으며 아이들 몰래 눈물 흘리다 들켜서 혼날 정도입니다.
Q. 남편 사별 후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지요.
A. 갑작스런 사별로 현재는 긴급생계지원을 3개월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픈 친정엄마를 모시며 생활비를 받아왔는데 남편 사별 후 형제들 집에 가 계십니다. 아직 저희도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다시 모셔와야 할지 고민입니다.
Q. 목유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세요.
A.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손놓고 넋놓고 있었는데 서울광염교회에서 조심스레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어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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