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that helps the family of the deceased ministers

남편의 뒤를 이어 낙도 선교회 간사로 사역하며

다도해 섬 주민들에게 전도하고 관계 맺고 복음을 전하고 기독교 문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04년 황정식 목사님과 강안숙(1965년생) 사모님은 “하나님께서 어디든 가라 명하시는 곳으로 가겠다”고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해, 여수에서 남동쪽으로 27km 떨어진 다도해 섬 중 하나, 작은 일곱 개의 섬이 모래톱으로 연결되어 사도(沙島)라 불리는 섬, 당시 25가구가 있던 그곳으로 부임했습니다. 4명의 자녀가 있는데 섬에 학교가 없어 여수 시내에 당시 11살이던 큰 딸과 10살이던 큰 아들을 작은 방을 얻어 자취시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해주러 갔지만 돌아오는 배 시간에 맞추느라 아이들을 만나지는 못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강 사모님은 빈혈과 멀미가 심해서 한 번 왕복 4시간 배를 타면 다음 여수로 나갈 때까지 힘들게 보냈다고 합니다. 2005년 청천벽력같은 황 목사님의 위암말기 판정을 받았고, 수술 후 10개월 만에 천국으로 이사했습니다. 당시 의사는 3-6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했는데, 퇴원 후 3일 만인 2006년 5월 25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황 목사님은 천국으로 떠나기 전날 자녀들을 한 명씩 껴안고 마지막으로 강 사모님도 포옹한 후 찬송을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강 사모님은 쑥스러워 남편 목사님을 향해 “사랑해요”라고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큰 딸도 투병 중인 아빠에게 “사랑해요”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사춘기 때라 쉽게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것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사춘기 중이었지만 엄마인 강 사모님에게는 “사랑해요, 엄마”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강 사모님은 현재 낙도 선교를 위해 헌신했던 남편의 뒤를 이어 낙도 선교회 간사로 사역하며 다도해 섬 주민들에게 전도하고 관계 맺고 복음을 전하고 기독교 문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남편 사별 당시의 정서를 이야기해 주세요.
A. 복음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것이라면 ‘남편의 삶이 복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남편에게 “좀 잘해줄 껄”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
A. 남편이 힘들다고 표현할 때 좀 받아줄 껄 그랬다 싶습니다.

Q. 언제 남편의 빈자리가 가장 크게 느껴지세요?
A.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런저런 문제들을 만나게 될 때,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으며 반항할 때 아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Q. 엄마지만 아빠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어떻게 감당했는지요.
A. 일단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웃음) ‘남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하고 행했습니다.

Q. 사모 역할을 내려놓았는데 마음이 어떤지요.
A. 사모로 살았는데 갑자기 사모 역할을 하지 않게 되니 많이 허전하고 힘들었지요. 어떤 집회에서 강사가 “한 번 사모는 영원한 사모다”라고 한 말이 위로가 됐습니다. 현재 출석교회에서 명예권사로 임명 받아 신앙생활 잘 하고 있습니다.

Q. 목사가 아닌 남편으로서의 남편이 그리울 때가 언제인지요.
A. 남편 생전에 저를 ‘여보’라고 부른 적이 없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하루 전에 저를 ‘여보’라고 불러줬습니다. ‘여보’라는 호칭이 듣고 싶을 때, 혼자라고 느낄 때, 남편이 쓰던 물건을 볼 때 남편이 그립습니다.

Q. 남편 사별 후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지요.
A. 남편의 뒤를 이어 낙도 선교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낙도 선교회 간사로 일을 하며 사례를 조금 받고 있고, 후원을 통해 살고 있습니다.

Q. 목유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세요.
A. 목유사는 힘들고 어려울 때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